제가 블로그에 약간의 홍보성(?) 글을 쓰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오늘은 그냥 이삿날이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이삿날. 회사는 가지 않지만 회사를 갔으면 싶을 만큼 힘든 날이지요, 보통은... 제가 오늘 한 일이라고는 아침 일찍 일어나 쓰래기를 버리고 커피 한잔하고, 부동산 업무 좀 보다가 점심 먹고 나가서 산책하다가 편백나무 효소찜질하고... 이삿날 오히려 힐링을 하는 기묘한 일을 겪게 됩니다. 예스2424라는 이사업체의 <예스 2424 - 경인 588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이사를 할 때 좋은 이사업체와 나쁜 이사업체를 고르는 기준은 각기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다음과 같은 항목을 기준으로 이사 업체를 판단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 물건에 최대한 흠집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
• 직원들은 친절해야 한다
• 꼼꼼하게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 이사가 끝나고 청소가 깔끔하게 되어 있어야 한다
• 고객의 요구사항을 만족스럽게 처리해준다
• 위생적인 포장에 신경써야 한다
• (그러면서도)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

보통 위 조건을 다 만족시킨다면, 혹은 1개 정도는 잘 못해도 대부분 만족시킨다면 우리는 그 이사업체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해줄 것입니다. 포장이사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비즈니스화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얘기죠.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내 집이 깔끔하게 바뀌어 있다는 광고도 까마득히 오래된 얘기니까요. 그러다보니 요즘 이야기하는 완벽한 이사라는 것은 주인은 손 하나 까딱 안하는데 집 하나가 통째로 말끔히 바뀌어 있게 만드는 것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 정도만 해주면 고객들은 충분히 만족하고 납득할 것이니까요. 그런데 세상에는 수 많은 장인들이 존재하듯 그저 단순한 비즈니스의 카테고리로 생각했던 포장이사 서비스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게임타이틀의 배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배치 순서가 완벽하게 똑같습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줄에 있는 자전거 탄 아오키지의 위치까지 동일합니다

중앙점보다 약간 우측에 배치했었는데 온 길보다 지나가야 할 길이 더 길도록 한 것이죠

책들의 배치순서는 아주 약간은 다르지만 거의 동일합니다

자주 꺼내보게 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분류가 있는데 살짝 섞인부분도 있으나 훌륭합니다

요즘 이사업체든 통신사든 땅콩리턴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항공사든 서비스업의 매뉴얼은 정말 대단해지고 있습니다. 친절교육은 물론이고 다양한 훈련을 받기도 하고 테스트를 거치기도 하지요. 고객들에 긍정적인 부분도 많지만 이런 매뉴얼에 의한 서비스들에 이미 많은 고객들은 ''면역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이 정도 서비스는 당연하다''라고 생각하고 서비스하는 입장에서는 ''매뉴얼에 충실한'' 직원이 되어야겠죠. 본인들 스스로도 ''진심''보다는 ''매뉴얼''에 익숙해져가는 기계적인 서비스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끔씩 어떤 서비스에 대해서 감동적인 글들이 올라오곤 합니다. 이런 글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매뉴얼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있거나 아주 사소하지만 진심이 담긴 행동들에 의한 것들이지요. 예스 2424의 경인 588팀은 놀랍게도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단지 원상복구를 시켜놓는 것이 아니라 남자옷, 여자옷, 여름옷, 겨울옷을 모두 분류합니다

당장 안 입는 옷들을 종류별로 다 이렇게 준비해오신 봉지에 쌓아 차곡차곡 정리해둡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게 상자 윗면을 조금 잘라놓으셨네요

이런 작은 배려가 마음을 움직입니다. 안해도 그만인 일인데 말입니다.

분류가 대단합니다. 서로 겹쳐 엉킬 수 있는 것들은 이렇게 봉투에

한 장, 한 장 각기 다 담아두었습니다. 정말 한 땀 한 땀 일을 하시더군요

선 때문에 엉킬 수 있는 고대기도 저렇게 박스에 담아 두셨습니다

물론 이 사진에 보이는 모든 박스는 저희가 쓰던게 아니라 직접 구매해 오신 것이지요

이 팀의 구성도 상당히 재밌습니다. 팀원 전체가 ''가족''이라는 점입니다. 가족 같다는게 아니라 실제 가족이라는 것이죠. 팀웍이 척척 잘 맞는 이유가 여기에 있던 것일까요? 더 놀라운 것은 저도 오늘만큼은 이들의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겠지요. 보통 이사를 할 때 부모님이 오시면 잔소리가 많으시죠. "이건 여기에 놓는게 좋지 앟겠니? 아니야 엄마가 살아보니까 이건 이렇게 해야돼"... 이런 것들이 때로는 마찰을 빚기도 하지만 애정어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이 팀도 그러합니다. 더 효율적인 배치, 더 효율적인 공간, 더 뛰어난 비주얼을 찾아내기 위해서 고민합니다. 그저 매뉴얼대로 고객이 하라는대로 기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의견을 제시한 것 중 9할은 그들의 의견에 따랐습니다. 제시 방향도 굉장히 합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사를 전문적인 업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이다보니 매일 반복적인 일들에 매너리즘에 빠져있을만도 한데 고객들의 집을 위한 다양한 고민을 하기까지 하다니 (그 제안의 대한 결과를 떠나서) 존경스럽습니다.    

점심식사를 하신 후 다이소에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저희 집에 어울리는 분류박스와 조화를

구매하시기 위함인데요, 용도에 맞춰서 저렇게 분류를 해주심은 물론 디자인도 환해졌습니다

치약을 편하게 잘 짜서 쓰라고 이런 것 까지 붙여두시고 가시네요

이사를 했을 뿐인데 집 전반의 실용성이 상승해버리는 효과까지 체감합니다

저는 RPG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 입니다. 스스로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매뉴얼 같은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진심''을 담아 게이머들이 감동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정도 쯤이야..."라는 생각을 쉽게 하지 않아야겠죠. 분발해야겠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그냥 이사를 했을 뿐인데 인생수업을 해버렸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게이머들 돈을 악랄하게 뺏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보면 저런 서비스는 나오지 않겠지요. 포장지 하나 하나에 악세서리를 집어놓고 고객의 편의를 위해 여름옷, 겨울옷, 남자옷, 여자옷을 분류해놓고 이동 동선에 따른 식기배치와 단정된 느낌을 위해 선을 정리하는 작업 하나하나 까지 배울 것 투성이었습니다. 사비를 들여 조화를 구입해서 적절한 장소에 배치해주시거나 예쁜 박스들을 통해 디자인은 물론 실용성까지 잡아주는 이사서비스를 보면서 감탄하고 감탄하고 또 감탄했습니다. 다 끝났나 싶더니 새 걸레를 잡고 힘쓰던 남자분들이 바닥을 걸레롤 성심성의껏 닦고 자국 같은 것이 있으면 힘껏 밀어 자국을 없애려 들더군요. 벌써 12시간이나 작업을 하신 분들이 말입니다. 이 장면에서는 뭔가 조금 울컥해서 눈에서 땀날뻔 했습니다. 이 분들 계다가 프라이드도 상당하시더군요. 마치 우리집을 잘 꾸며놓은 마냥 만족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프로''를 넘어선 ''장인''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사를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 대신 조금 다른 표현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경인 588팀 여러분 한 수 잘 배웠습니다. 뜻 깊은 인생수업 정말 감사드립니다.